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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피아노:블라디슬로프 스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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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한나라 작성일16-02-0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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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슬로프 스필만,Wladyslaw Szpilman (December 5,1911 – July 6,2000)
 
폴란드 태생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2002 칸느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동의 대작 <피아니스트>는 인류사 최대의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한 실존 피아니스트를 그린 영화이다.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 바르샤바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에서 무엇보다도 참혹한 비극이 바로 유태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1933년부터 2차대전 종결까지 당시 유럽에 살던 유대인 80%인 575만 명이 학살당하였으니 인류 사회 문화에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대단한 전쟁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명한 피아니스트에서 간신히 하루하루의 삶을 연명하는 처절한 한 인간으로,그러나 마침내 살아남아 다시 피아노 앞에 선 한 남자의 극적인 삶은 그자체가 바로 드라마이며 영웅담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유태계 폴란드인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1911 - 1988)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같은 유태계 폴란드인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역작이다.
로만 폴란스키는 유년 시절 나치의 유태인 학살 현장에 있었던 직접 피해 당사자였다고 한다.

 

어머니를 가스실에서 잃은 폴란스키는 이런 뼈아픈 경험 때문에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의 연출을 직접 제안했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거절하였다.

 

그러나 폴란스키는 스필만의 회고록을 발견하자 이것이야말로 그가 평생을 기다렸던 작품임을 깨닫고 대작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로 만들어 낸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개인적 감상주의나 신파로 물들여 관객에게 호소하지 않고 살아 남기 위해 비굴할 정도로 변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초라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냉정할 정도로 담담한 시선으로 역사와 광기,예술과 인간애를 그려냈다.

 

실존 인물 스필만은 39년부터 45년까지 폴란드 바르샤바(Warsaw) 게토(Ghetto,유대인 강제거주지역)에서 공포와 광기에 맞서 홀로 생존을 위한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독일이 바르샤바를 포기한 1945년 1월,36만 명이나 되던 이 도시에서 살아남은 유태인은 스필만을 포함하여 불과 20여명 뿐이었다고 전한다.
수많은 죽음의 위험 속에서 스필만은 자신의 생존 의지와 예술적 재능으로 가까스로 살아나게 된다.

 

 

 

<피아니스트>의 주인공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1911년 폴란드 소스노빅(Sosnowiec)에서 유태계 폴란드인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에스데라(Esthera)이후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미샤코프스키(Aleksander Michałowski),베를린 아트 음악원에서 슈나벨(Artur Schnabel)과 크로이쳐(Leonid Kreutzer)로 부터 피아노를 사사하였다.

 

이 당시 그는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인 죠셉 스미도비크와 알렉산더 미칼롭스키와 함께 피아노를 배웠다.

 

또한 슈레커(Franz Schreker)로 부터 작곡을 배웠다.

 

이 시기에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고,피아노소곡 >기계의 인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피아노 연주곡을 작곡했다.

 

이 곡들은 그의 고국 폴란드에 커다란 영예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이후 급속도로 인정받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성장하였다.

 

 1935년 스필만은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국영라디오 방송국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1939년 9월,그가 피아노 연주를 하던 방송국이 독일군의 폭격을 맞으면서 제 2 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6년 동안 전쟁의 공포 속에서 피난생활을 지속하다가 기적처럼 독일장교의 도움으로 대학살에서 살아남았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스필만은 6년 전 중단했던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면서 폴란드 국영라디오 방송을 다시 시작하였다.

 

1946년,자신의 경험을 쓴 회고록 <죽음의 도시>를 출판하지만 폴란드의 공산정권에 의해 판금 당했다.

 

그는 다시 음악인(작곡가와 피아니스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유럽과 미국전역을 걸쳐 콘서트를 열었다.

 

그가 작곡한 수많은 곡들은 폴란드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또한 1950년대부터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이로 인해 1955년에 폴란드 작곡가 협회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1961년,폴란드 대중음악가 연맹을 위해 소폿에서 국제음악제를 개최한 스필만은 1964년 폴란드 작곡가협회의 멤버로 선출되었다.

 

1998년 한번도 아버지로부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그의 아들 안드레이는 아버지의 회고록을 발견하고 이를 전세계에 공개하였다.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성공을 거두며>라는 제명으로 전세계에 번역,출판되었다.

 

스필만의 책은 유대인거주지역에서 일어난 생생하고 역동적인 삶의 보고서이자 그 자신의 경이로운 탈출과 생존에 관한 보고서이다.

 

강렬한 주제의식,입체감 넘치는 인물들과 감정들로 가득 찬 이 책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커다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로만 폴란스키는 책을 읽기 전 스필만과 두 번의 만남을 가졌고 2000년 초,세 번째 만났을 때 그에게 책의 영화화를 이야기했다.
스필만은 같은 민족이 자신의 회고록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에 대해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영화가 촬영되기 전 2000년 7월 6일 88세의 나이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앨범

 

1.Wladyslaw Szpilman - The Original Recordings of The Pianist

 

  Wladyslaw Szpilman,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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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Legendary Recordings of Wladyslaw Szpilman

  Wladyslaw Szpilman,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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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inde Krejci-Hosenfeld(left), daughter of German officer Wilhelm Hosenfeld and Wladyslaw Szp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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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중에 포로로 잡힌 스필만을 구해준 독일군 장교,빌헬름 호센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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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Wojciech Kilar / 150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종교개혁은 독일에서 일어났다.
그때의 청교도 정신을 이어 (물려) 받은
어느 독일 고위층 인사는 2차 세계대전 발발 전부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인 벌을 언젠가는 받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일까?
실제로 벌어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절대로, 절대로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었지만,
인류가 생긴 이래, 최고로 잔인한 만행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홀로코스트의 역사는 이후 20세기 중반부터 수많은
영화들의 주제가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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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럴 전망인데
이 주제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들 중에서
이 “피아니스트”는 실제 “홀로코스트”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Roman Polanski”(1933, 프랑스 파리)(아래 사진) 가
제작을 하고 감독을 맡았다는 것이 상당히 의미가 깊다.

 

전쟁발발 2년 전에 프랑스에서 폴란드로 이주했던 부모와 함께 (유대인)수용소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어린 “Polanski”는 우여곡절 끝에 "게토"(유대인 강제 거주구역)
에서 8살 때 홀로 탈출을 하여 (폴란드인들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으니, 이 영화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와 결코 다를 바가 없다.
(유대인 아버지는 살아남아 종전 후에 재회를 했으나, 러시아인 어머니는 결국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타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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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Schindler's List”의 감독직을
“Steven Spielberg”로부터 제의를 받았을 때는 주제가 너무 개인적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했다고 하지만, 이 영화 역시 (비록 예술성은 더 강조 되었다고 하더라도)
한사람의 실존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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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가 국보급으로 인정한 유대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Wladyslaw Szpilman”(블라디슬로프 스필만, 1911-2000)(위 사진)  

 

1945년에 처음으로 발간을 하고 1998년에 재발간이 된
원작 회고록,
“DEATH OF CITY(죽음의 도시)” 에서부터
기획 제작이 시작이 된 이 영화도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들며 기적 같은
인생을 살다 간 "Szpilman"의 (한때의)행적을 다루고 있지만 너무나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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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발발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국보급 천재 피아니스트
“Szpilman”도 나치의 만행 아래서는 영화 속에 나오는 독일 군인들의 말(대사)
그대로 그저 하나의 “Jewish Pig” 일뿐,

 

 


한편, “Szpilman”을 구해준 독일군 장교(대위)
“Wilm Hosenfelt”(1895-1952)의
사연도 참으로 기구하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점령군 장교로서의 임무와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의 의무를 둘다 잘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는 그는,
“Szpilman” 이전에도 남들 모르게 여러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을 구해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1944년 늦가을에 “Szpilman”과 조우를 한 이후, 1945년1월에
소련군에 의해 체포가 되고, 1950년에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하던 중,
1952년8월에 스탈린그라드 인근 감옥에서 병사를 했다고 한다.

 

폴란드말까지 배워가며 몰래 선행을 베풀었던 그의 일기에는
“Szpilman”과의 만남이 구원자와 피구원자의 만남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과의 만남
이었다고 회고를 하였고, 폴란드의 거리를 걷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자신이 독일군
장교임에 깊은 좌절을 느꼈었다고 하는데, 정작 종전 후에 자신은 (“Schindler”와는
달리, 자신이 선행을 베풀었던 사람들에게서) 구원을 (돌려)받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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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에도 “Szpilman”은 Warsaw 의 한 방송국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폭격을 받을 때 연주하던 “쇼팽의 야상곡”에서부터
이 영화는 “쇼팽”의 음악들을 주제곡처럼 사용했다.
그리고 이 음악들의 연주는 또 한명의 “Szpilman” 이라고 불리는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자누스 올레니작”(Janusz Olejniczak,1952-    ) 에 의해
녹음이 되었는데, OST 앨범에는 “Szpilman” 자신이 1948년에 직접 녹음을 한
연주곡도 함께 들어있다.

전체 Original Score 는 우리나라에서는 좀 생소한 인물이지만
이미 150여편의 영화음악을 만든바 있는 (역시) 폴란드 출신의
“Wojciech Kilar”(1932) 가 맡았는데, 그는
주옥같은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들 (아래 OST 수록곡 참고) 이외에도
“베토벤”의 그 유명한 “Moonlight Sonata”와 “바흐”의 음악도 추가 삽입곡으로
사용을 하면서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이 한많은 유대인의 사연에 잘 접목을 했다.

 

 



달리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그래도 역시 삶에는 기적이 있게 마련인지 “Polanski” 감독 자신도 그랬듯이
여러 사람들(독일군 장교 포함) 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2000년까지 오랫동안 장수를 했는데, 그의 사후에서야 완성이 된
한많은 사연의 이 영화도 “Anne Frank 의 일기” 그리고 “쉰들러 리스트”와 함께
인류가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역사를 증언하는 명작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아름다운 “쇼팽”의 선율과 함께.......
(아래는 그의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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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Wladyslaw Szpilman”과 외모가 아주 비슷한
헝가리안 이민 후세,“Adrien Brody”(1973, 뉴욕) 가
1,400대 1의 경쟁을 뚫고 주인공을 맡았는데
(“블라디슬로프 스필만”도 생전에 이 캐스팅 작업에 참여를 했다고 한다.)
촬영도중에는 실제로 체중을 엄청나게 줄여 (무려 14Kg)
병으로 고통 받던 젊은 시절의 “스필만” 역을 아주 실감나게 소화했다.
거기다 또 그역할에 몰두하기 위해 제작기간 내내 TV 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연기자에서부터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혼이 담긴 듯한 제작 열기
때문인지, 이 영화는 매번 볼 때마다 “도대체 산다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을
도무지 지울 수가 없다.

 

폴란드,
홀로코스트,
“쇼팽”과 “스필만”
영화 “피아니스트”는 이런 단어들이 너무나도 슬프게 조합이 된 또 하나의
인류역사 기록(명작) 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 이 영화는 2002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외에도 2003년 아카데미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그리고 2003년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 외에 여러 상을 수상하였는데,
1978년에 그 이상한 사건(미성년자 추행이라는) 으로 미국을 떠난 이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바 있는 “Polanski”를 위해 (지금도 미국
입국시에는 체포가 된다고 함)
배우 “Harrison Ford”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대신 전달했다.

 

 

*.Chopin - Nocturne No.20 in C-Sharp minor (from OST - The Pianist )
                                                                  
Szentpeteri Csilla,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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