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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 교향곡 05번 c sharp minor -5악장 지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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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한나라 작성일16-03-0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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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ler - Symphony No.5 in c sharp minor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지휘)
베를린 필

Bernard Haitink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1988/05 (ⓟ 1989) Stereo (DDD)
Philharmonie, Berlin
 
 
 
작곡 연도: 1901년 ~ 1902년 여름
 
작곡 장소: Maiernigg 근교
 
출판/판본: 1904년 Leipzig의 Peters 출판사
 
헌정, 계기: 헌정자 없음
 
초연 연도: 1904년 10월 18일
 
초연 장소: 쾰른
 
초연자: 작곡자 자신(지휘)
 
악기 편성/
플루트(제3, 제4는 피콜로와 겸함) 4, 오보에(제3은 잉글리시 호른 겸함) 3, 클라리넷(제2는 E flat 클라리넷, 제3은 베이스 클라리넷과 겸함) 3, 파곳(제3은 콘트라파곳과 겸함) 3, 호른 6, 트럼펫 4, 트롬본 3, 튜바, 글로켄슈필, 팀파니, 심벌즈, 베이스드럼, 사이드드럼, 탐탐, 하프, 트라이앵글, 현 5부
 
 
 
 
웅대한 자연 시(詩)에서 질풍노도의 피날레로 이어지는 1번, 죽음과 부활의 고통스런 변증법인 2번,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 주는 공포에서 시작해 자연과 인간과 절대자의 교감을 발견하는 3번, 어린이가 보는 천국의 행복을 노래한 4번, 앞의 네 곡은 분명 젊은 사람의 음악이다. 극단적인 고뇌와 환희를 오가며 삶의 의미를 캐묻는 모습은 젊은이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하지만 5번에서 말러는 더 이상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뇌는 이미 확인된 고뇌고, 환희 또한 이미 확인된 환희다. 이것은 성숙한 인간의 음악이다. 모든 정서는 더욱 단단히 압축된, 정제된 형태로 표현된다. 앞의 작품들에서는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성악을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5번은 순수한 기악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말러의 5번은 앞의 네 곡에서 보여준 방황의 결산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특징짓는 방황과 고뇌는 아직 끝나기에는 멀었으니, 훗날 9, 10번에서 말러는 다시 삶에의 집착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5번은 그가 걸어간 길이 한복판에 가장 견고하게 서 있는, 그의 인생의 표적과 같은 곡이다. 말러는 이 곡에 대해 음악 외적인 표제를 붙인 일이 없다. 말러는"이 교향곡은 열정적이고 거칠고 비극적이고 엄숙하며 인간이 모든 감정으로 가득하지만,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한 1901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빈 국립 가극장의 감독으로 4년째 알하며 지휘자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고, '괴짜', '이방인'이라는 편견을 벗고 작곡가로서도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스무 살의 아름답고 총명한 알마 쉰틀러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 여름에 작곡하기 시작한 이 곡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적나라한 얼굴을 그리고 있다. 20세의 젊은 알마에게 결코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게 할 수 없었던 말러의 거대한 내면, 그 고독한 세계이다.
작품 배경 & 개요
교향곡 5번은 여러모로 앞의 교향곡과 다른 점을 많이 보이지만, 특히 론도 피날레의 마지막 악장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푸가 패시지와 복잡한 대위성부(초기 교향곡이 대위 선율들은 좀 더 투명하고 분명하여 단선율적인 경향이 있다)들이 가장 두드러진다. 1901년의 봄과 여름에 말러가 바흐의 다성음악 연구에 몰두한 것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말러는 '바흐의 음악이 모든 음악의 씨앗이며 그보다 더 위대한 다성음악은 없다'고 여겼으며, '바흐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모른다'고 친구들에게 고백했다.
브루노 발터가 지적했듯이 말러의 교향곡 5번은 그 어떤 곡보다도 절대음악에 가깝다. 그러나 역시 말러가 말러이니 만큼 음악 외에 그 어떤 것도 이 곡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데, 베토벤 이후 독일 교향곡이 가지고 있었던 '고난에서 광명으로'라는 모토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각 악장들의 의미를 굳이 찾으려고 한다면 어렵지만은 않다. 스케르쪼에 관해서라면 말러는 바우러-레히너에게 '삶의 정점, 낮의 밝은 빛 속에 있는 인류'라고 말한 적이 있고, '삶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다지에토는 당연히 알라 말러를 염두에 두어도 될 것이다.

 
 
제3부
 
말러 교향곡 5번 Symphony No.5 in c sharp minor - 5. Rondo - Finale. Allegro - Allegro giocoso. Frisch [15:53]
론도 피날레 <알레그로>
피날레. 여러 가지 점에서 1악장 장송 행진곡과 대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5악장에 이르면 1악장의 행진곡에 표현된 고통과 슬픔은 떠들썩한 기쁨의 함성으로 반박되는 것이다. 2악장에서 잠시 연주되었던 금간 코랄은 여기서 진정한 환희의 합창으로 울려 퍼진다. 그러나 5악장은 지나치게 가볍고 들떠있어서 학자들에 따라서는 5악장의 기쁨을 단지 죽음으로부터의 도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이 곡은 서주를 포함한 소나타 형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 중간에 상당히 많은 푸가 패시지가 삽입되어 있다. 말러가 그토록 공부한 바흐의 다성음악은 이 곡 전체에 펼쳐져 있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푸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이 악장인 것이다. 이 악장에 대한 학자의 의견은 대체로 양분되어 있다. 리하르트 슈페흐트나 파울 베커 등의 좀 오래된 세대들은 '삶의 의지', '힘을 향한 의지', '지상의 삶에 대한 찬가' 등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는 반면, 아도르노를 선두로 한 보다 최근의 학자들은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고, 아도르노는 "말러는 형편없는 예스맨이다. 그의 목소리는, 니체가 가치를 주장할 때, 그 자신이 이 '극복한다'는 역겨운 개념을 연습할 때처럼, 깨뜨려진다. 그는 마치 즐거움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음악을 만들어 놓았다." 라고 비난했다. 이들의 양분된 해석에 공통된 것은 결국 이 곡이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 가운데서 가장 긍정적인 악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D 장조 코랄은 밝은 빛 속에 삶이 놓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데, 사실 생애에서 거의 유일하게 흠 없이 행복한 순간에 있었던 말러였기에 이런 곡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말러가 브루크너와 가끔 비교되지만, 이 두 작곡가가 완전히 다른 점은 바로 이 코랄에서 나타난다. 두 작곡가 모두 교향곡에서 즐겨 코랄을 사용했지만 브루크너는 한번도 이 곡에서 쓰인 것과 같은 경박한(?) 코랄을 쓰지 않았다. 말러와는 달리 그에게 음악은 종교와도 같이 성스러운 것이었는지 그는 언제나 교회 코랄만을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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