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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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를 심는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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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한나라 작성일16-02-0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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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자의 심경변화는 헤어스타일의 변화로 표출된다던가...
살면서 몇 번 내가 그러했다.
오늘은 아이들을 두고 혼자 도서관에 가기로 하고
출격<?>전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잘랐다.
나태함과 무의미한 초침에 대한 결연한 의지(아주 우스운, 겸연쩍은...).
머리에 빨간띠를 두르지는 못하더라도
거듭 난 사람이란 걸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2
몇 달째 글 한 줄 쓰지 못할만큼 메마른 마음을 위해
도서관의 향기와 정기가 묘약이란 자가진단에 이은 처방이다
도서관은 경건하고 진지한 부류의 사람들이 찾는 곳일까
그런 관념으로 머리를 잘랐을까?
그렇게 차림새를 바로하고 애마에 올라앉아 클래식 씨디를 넣고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2번을 들었다.
무언가 고민이 있거나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으레 듣는 바흐...
매무시 단장에 이어 마음도 도서관의 정기를 받기 위한 모드로 몰입한다.
바흐를 배경으로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린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우선 책을 반납하고
십진법 분류에 의해 614로 시작하는 곳에서 책을 선택해야지.
수필을 고를까 아님 시집을 선택할까?>
분주히 여러 상황을 머리 속으로 그려본다.
 
#3
이렇게 돈키호테가 수행자의 탈을 쓰고 도착한 도서관
출발하기 전의 결연했던 마음과 달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돈키호테는 책 한 권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마치 오늘 눈 앞의 책들을 다 읽어야만 할 것같은 허영과
긴 시간을 마음의 양식에 굶주린 탓에 뭘 먹어야할지도
선택할 수 없는 패닉상태~~~~
한참을 그런 무정부적 상태에서 석상이 되어버린 나.
'우선 편하고 쉽게 시작하자'
'지구가 당장 내일 멸망하는 건 아니니까...'
와이프를 위해 공지영씨의 <깃털>을 고르기까지 한 시간여가 지났다.
후후.. 내가 읽을 것도 아니었는데 책 한 권 손에 잡기가
책 한 권 읽는 일보다 어려웠다.
책에 대한 <낯설음>, 돈키호테~~~
지난 주 다섯권을 대여하고 오늘 두권을 반납했기에 오늘 주어진 할당량은 두권.
공지영씨의 책은 와이프가 읽은 후에 볼 요량으로
내 몫으로 클래식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방송국 아나운서가 쓴
음악 에세이집을 골랐다.
 
#4
긴 시간을 디지털에 길들여지다 찾은 도서관이
내 책꽂이처럼 훤하게 눈에 들어오려면
당장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허영을 버린 것은 잘 한 일이라 자화자찬.
내게 주어진 생명의 달력을 몇 해 동안 보게 될지 모르지만
어차피 도서관의 책들이 전부 내 것일 수는 없겠지.
사과나무를 심기 전 마른 땅에 물을 주는 일,
생명이 움틀 여건을 만들어주는 일이 우선이겠지.
아름다운 사람들을 도서관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차에서
하이든의 현악사중주 '황제'의 1 악장을 들었다.
도서관에선 감히 높은 데시벨로 질문조차 어려웠지만
책 한 권이 집으로 향하는 황제의 길에 금의환향을 위한 양탄자를 깔아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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