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건우 님 / 설거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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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한나라 작성일16-02-08 12:52본문
아내가 잠든 사이 설거지를 해 본다
덩그마한 싱크대 중간에
압력밥솥 바닥부터 층층이 쌓여진
식기들
간장종지는 밥 그릇 안으로 파고들고
밥그릇은 국
그릇 위에 얹혀지며
젓가락은 쭈볏하게 돛대처럼 꽂힌 채
난파선처럼 기울어있는 우리 삶의 밑천
큰 것은 오로지 작은 것을 수용하고파
이빨보다 가지런히 궁냥 하던 식기가 품은
켜켜이
푸접하며 쌓이고픈 체적의 질서
해무海霧빛 뽀얀 세제의 거품을 일어
오염된 삶의 부속을 씻긴다
내 문패같이 오종종한 이
작은 한쪽 공간에
바다가 들어와 앉아 있었다니
아내는
바로 한 끼 앞에서 난파된 배의 키를 거두어
하루 세 번을 십 수 년 동안 바다를 건사하듯
삶의 밑천을 닦고 널어 말렸구나
생의 동력이 따뜻한
밥을 보듬어 안은 주발처럼
식지도 깨지지도 않기를 소망하면서
갑문같이 젖은 손을 열고 닫으며
하루 세 번 바다를
비우고
다시 담아두려 하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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