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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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호 님 / 느티나무 女子에게서 사랑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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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한나라 작성일16-03-14 23:39

본문

1.

어릴 적 마을 복판에 서 있던 느티나무 여자에게도 애인이 있었다네 동리 어귀에 장승처럼 버티고 선 허리 굵은 느티나무가 그녀의 남정네였지 아이들 서넛이 손을 맞잡고 둘러서야 겨우 안을 수 있던 그의 허리에서는 매일 눈물처럼 樹液이 넘쳐흘렀네 나는 남 몰래 한 줌씩의 사랑을 퍼다 그녀에게 전해 주었네

그녀는 우주로 통하는 자궁을 가졌네 한 손에 연애가 담긴 편지를 들고 나무 여자의 몸 안으로 들어가면 그 위로 항아리 만한 하늘이 늘 파랗게 웃고 있었지 그녀가 집집의 사람들을 다 쓰다듬고도 남을 이파리들을 흔들며 멀리 있는 애인에게 그리움을 날리는 것도 나는 한 눈에 볼 수 있었네
톱날이 연인의 그 굵던 허리를 잘라 버리고 아무리 까치발을 해도 그의 머리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는 우리는 행복했네 아아, 추억의 한 자락이라도 잃지 않으려는 듯 그녀가 제 안으로 향하는 문의 빗장을 채우기 전까지는




2.

느티나무에게서 나는 사랑을 배웠다
어린 사랑의 전령이었던 나는
고여 있는 나무의 마음을 퍼다
그의 애인에게 날라주었지
제 안의 그리움을 퍼내면 퍼낼수록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을 안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네
사랑하다
사랑하다
제 한 몸 뿌리째 없앰으로
비로소 하나가 되는
느티나무의 사랑,
느티나무는 내 사랑의 선생이었네


3.

사내의 마음을 다 갖고 나서야
여자는 몸의 빗장을 건다
그녀가 은밀한 자궁의 자물쇠를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은 완성된다
천 년이 지나도 마르지 않을
그리움의 샘이 만들어진다

소멸의 문턱을 넘고 나서야
눈부시게 제 몸을 일으키는
절정의 그리움

느티나무 여자에게서 나는 그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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