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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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님 / 책장애벌레(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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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한나라 작성일16-02-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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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책장은 망치로 부수는 것보다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

나무의 이음새마다 박혀있는 나사못

숨쉬기 위해 열어놓은 십자정수리를 비틀면

내장까지 한꺼번에 또르르 딸려 올라오고

허물처럼 남아있는 벌레의 집에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들었다

안간힘을 다해 붙어있는 것들을

대여섯 마리씩 잡을 때마다

하나 둘 떨어져나가는 책장의 근육들

바닥에 납작 주저앉을 무렵엔

한 줌 넘게 모인 애벌레가 제법 묵직했다

가지와 가지 사이를 물고

깊은 잠을 자야했던 동면기가 끝나면

훨훨 나비가 되어 숲속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책장이 늙어버린 탓에

애벌레만 집을 잃고 말았다

꼼지락거리는 것들 땅바닥에 던져버리려다

휘오리돌기가 마디마디 살아있어

공구함에 보관해둔다

상처도 없고 눈물도 없으니 언젠가는

다시 나무속에 들어가 살게 될지도 모른다

밤만 되면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소리

나무의 빈 젓을 물고 싶어 오물거리는 소리

고아원의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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